경천(1910)
1910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
하느님을 공경하라-경천
하느님을 공경하라는 뜻이다. 안중근이 뤼순 감옥에서 사형집행 당하기 전에 썼다. 네 번째 손가락 한 마디가 잘린 손도장이 찍혀있다.

안중근(1879~1910)이 1910년 3월 뤼순 감옥에서 사형집행을 앞두고 일본인의 부탁을 받아서 쓴 유묵. 하느님을 공경하라는 뜻인 ‘경천(敬天)’이 쓰여 있고, ‘대한국인 안중근이 쓰다(大韓國人 安衆根書)’라는 글씨와 왼손 약지를 잘라낸 채 찍은 손도장이 선명하게 담겨 있다. 경천(敬天). 하늘의 이치에 따라 국가와 국민이 스스로 본분에 맞게 도리를 지키고 양심을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. 안중근 의사(1879~1910)가 사형 집행을 앞둔 1910년 3월 어느 날, 중국 뤼순 감옥에서 작성한 것임에 글귀에 깃든 엄중한 외침은 그 의미하는 바가 크다. 일제의 침략과 학살에 항거하다 후손들을 위해 서른살의 짧은 인생을 형장의 이슬로 마감한 안중근 의사. 그가 남긴 마지막 유묵(遺墨)과 그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메시지는 2017년을 여는 이 시점에 이기심에 눈 멀고, 피 먹은 역사의 근간을 망각한 이들에겐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큰 울림으로 다가갈 것이다. “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,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.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.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.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.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,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.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.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.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,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.”(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)

「안중근의사유묵-극락(安重根義士遺墨-極樂)」은 안중근(安重根:1879∼1910)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 역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(伊藤博文)를 사살한 뒤 여순감옥(旅順監獄)에서 1910년 3월 26일 사망하기 전까지 옥중에서 휘호한 유묵을 일괄ㆍ지정한 것 중의 하나이다. 일괄 지정된 이 작품들은 1910년 2월과 3월에 쓴 것으로 글씨 좌측에 “경술이(삼)월, 어여순옥중, 대한국인안중근서(庚戌二(三)月, 於旅順獄中, 大韓國人安重根書)”라고 쓴 뒤 손바닥으로 장인(掌印)을 찍었다. 글씨 내용은 「논어(論語)」ㆍ「사기(史記)」 구절 등 교훈적인 것이 많으며, 자신의 심중을 나타낸 것, 세상의 변함을 지적한 것, 일본에 경계하는 것, 이밖에 어떤 사람의 당호(堂號)를 써준 것 등이다. 유묵 대부분은 당시 검찰관, 간수 등 일본인에게 써준 것들이다. 그중 제569-21호는 러일전쟁 때 종군했다가 전쟁이 끝난 뒤 여순감옥에서 근무했던 사람[오리타타다스(折田督)]이 받은 것으로, 8ㆍ15 광복으로 그의 가족들이 일본으로 귀국할 때 조카[오리타간지(折田幹二)]에게 넘겨주었고, 그것이 1989년 2월 20일 단국대학교에 기증되었다. 또 569-25호는 안의사 수감 당시 여순감옥에서 경관을 지냈던 이의 손자[야기마사즈미(八木正澄)]가 2002년 10월에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한 것이다. 또 제569-22, 23호는 앞쪽에 “야스오까 검찰관에게 증여한다(贈安岡檢察官)”라고 적었듯이 당시 관련했던 검찰관에게 써준 것이다.